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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_ 플라멩코 선율 속에서 집시처럼 들떴던 세비야의 밤

 

플라멩코 선율 속에서 집시처럼 들떴던 세비야의 밤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99호 | 20090201 입력 

세비야 중앙 광장에서는 매일 플라멩코를
비롯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우리 부부가 바르셀로나의 한 민박집에 묵었을 때 이곳에서 20년 이상 체류한 60대 주인 아저씨는 대뜸 도인처럼 말했다. “삶의 질은 이곳에서 찾으면 안 되지. 세비야로 가 봐.”


나는 순간, 뭉근하게 떨려 오는 심장 박동 소리를 느꼈다.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물, 그라나다의 자랑인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삶의 질은 도통 찾아볼 수 없었기에 설렘은 더했다. 삶의 질이라…. 우리는 순진하게 그 말을 무턱대고 믿어 보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그라나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세비야는 플라멩코와 카르멘을 낳은 집시의 도시다. 지리적으로는 스페인 남부에 위치해 있어 뜨거운 햇살을 벗 삼아 한껏 늘어질 수 있고, 물가도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싼 편이다. 덕분에 해물볶음밥인 파에야와 ‘핏빛 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 칵테일 상그리아를 양껏(?) 즐기며 모처럼 신났다.


주인 아저씨의 말은 옳았다. 저녁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도시 세비야는 ‘쉬는 것이 전부’인, 이를테면 한국의 제주도 같은 스페인의 대표적 휴양지다. 길고 울창한 야자수가 광활한 광장에 줄지어 서 있고, 자동차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이따금 트램(전차)이 자전거 속도로 사람들을 실어 나를 뿐. 여유로움이 반드시 관광객들만의 차지는 아니었다. 일반 상점의 직원은 손님이 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오후 1시30분이 되면 시에스타(낮잠 풍습)가 시행되므로 4시까지는 쇼핑은 물론 닫힌 쇼윈도 덕분에 아이쇼핑도 못 한다. 음식점은 점심 영업 후 ‘한숨’ 자고 오후 8시30분에 다시 문을 열기 때문에 그전에는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한다. 어디를 가든 24시간 풀가동되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온 우리로서는 세비야는 여러모로 불편한 도시였지만 그 여유와 배짱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느긋한 광경을 두고 주인 아저씨가 ‘삶의 질’을 운운했을 것이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데다 월드뮤직 CD를 ‘준음악평론가’만큼 소유하고 있는 남편에게 세비야는 천국이었다. 중앙 광장에서는 플라멩코 거리 공연이 매일 벌어졌고, 저녁이 되면 거리의 악사들이 하나 둘씩 광장을 메웠다.


하루는 쿠바에서 건너온 혼성 3인조 밴드가 길가에 앉아 봉고를 두들기며 달빛 아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꼭 동네 산책 나온 사람들 같았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 장면처럼. 남편은 순박한 연주에 매료돼 급기야 그들이 만든 가내 수공업 CD를 샀다. 우리는 그들의 노곤한 연주를 들으며 아이처럼 쌔근쌔근 깊은 잠에 들곤 했다. 세비야의 하루는 그렇게 여유로 시작해 여유로 끝났다. 그리고 이것이 지면을 통한 우리 여행의 마지막이다.


햄버거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 고환율과 지긋지긋한 싸움을 벌였던 여행. 각자 50㎏이 넘는 짐을 끌고 다니면서 ‘퇴직금 날려 가면서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를 하루에도 열 번씩 반문했던 여행. 24시간 붙어 다니느라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수도 없이 찍었던 유럽 여행. 우리가 정말 이 고단한 여행을 사랑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남편은 이제 내게 사과를 닦아 먹으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나는 남편에게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그냥 봐주기로 했다.


코펜하겐에서 세비야까지 12회 동안 철없는 부부의 유럽 여행기를 읽어 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우리의 미래는 한층 더 불투명해졌지만 대신 행복을 얻었습니다. 백수 부부의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사는' 이야기와 못 다한 이야기는 아임이미리의 블로그(im2mm.egloos.com)를 통해 이어 가겠습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마루 | 2009/07/22 19:36 | 트랙백(117)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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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_ '돈의 도시'로 변질된 베네치아의 한숨

‘돈의 도시’로 변질된 베네치아의 한숨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이미리 | 제98호 | 20090124 입력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길은 

다양한 종류의 상점과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물안개가 자욱한 새벽녘,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반사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의 유럽 여행 중 단연 잊을 수 없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와! 정말 도시가 물에 잠겨 있구나!” 말로만 듣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거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인간의 두 발을 물과 뭍 사이에 정박하게 만든 최고로 아름다운 발명품이었다.


찰스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이 찬양했던, 118개의 섬과 약 40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이 도시에서는 꿈같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도 열린다. 영화 ‘베네치아에서 죽다’에서 그려낸 리도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폴 시냐크가 묘사한 베네치아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보다 훨씬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기대감과 환상은 곧 균열을 보였다. 배를 타고 30여 분 지나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8차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도시에서 살다 온 자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폐소공포증이었다. 한 사람만 겨우 운신할 수 있는 좁은 골목, 50㎏의 짐을 끌고 다니기엔 가파른 다리들, 여백의 미를 허락지 않는 빽빽한 건물의 범람. 나는 신경질적으로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근처에 어디 마당이나 뜰 같은 데 없을까? 갑갑해 죽겠어.”


누군가 ‘베네치아에서 지도를 들고 길을 찾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길 찾기에 귀재이자 공간 감각에 있어 천재인 남편도 별 수 없었다. 숙소를 찾아 이 다리로 저 다리로 수십 번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지만 수백 개의 골목과 고만고만한 건물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우리가 묵어야 할 단 한 곳의 방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급기야 우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유럽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숙소로 전화를 걸었고, 주인의 마중 끝에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준 아침식사를 먹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밀려드는 관광 인파에 넋을 잃고 말았다. 오전 11시 즈음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어느새 ‘돈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패션의 종주국답게 이탈리아산 명품 브랜드와 값비싼 피혁 제품이 즐비했다. 유리 세공품, ‘오페라의 유령’에서 본 것 같은 가면 소품들…. 자그마한 상점들은 상인들의 노골적인 탐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베네치아는 상술로 가득한 서울의 명동, 뉴욕의 맨해튼, 파리의 샹젤리제와 다르지 않았다.


‘본토’ 스파게티를 맛보기 위해 큰맘 먹고 레스토랑에 갔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소심한 남편이 겁을 잔뜩 집어 먹었다. 다혈질의 종업원이 빵과 스파게티, 물과 버터 등 여러 음식을 집어 던지다시피 거칠게 서빙한 것이다. 한술 더 떠 음식을 다 먹자마자 종업원은 우리에게 시계를 가리키며 “나가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와인을 따로 시키지 않아서였다. 나는 얼굴이 벌게진 남편을 다독였다. “월드컵 때 우리한테 깨져서 그래. 이긴 우리가 참자!”


나중에야 알았지만 베네치아인들 역시 관광객에 치여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관광객들은 밀물처럼 들어오는데 거주자들은 썰물처럼 외지로 나가고. 관광산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수많은 갈등이 웅크리고 있었다. ‘동화 속 배’라고 불리는 곤돌라,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리알토 다리, 해수면 상승으로 자주 물에 잠기는 산마르코 성당이 그 옛날 품고 있던 순수함이 지금의 베네치아에는 없다.


마크 트웨인이 커피를 마시며 베네치아를 찬양할 수 있었던 것도 10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변질을 두고 누구를 향해,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


부부 is 독립된 두 개체라고 생각했는데, 옆자리가 비었을 때 비로소 불완전한 하나임을 깨닫는 어리석은 사람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마루 | 2009/07/22 19:3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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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_ 1000㏄ 맥주도, 키스도 거침없이 ‘원샷’

1000㏄ 맥주도, 키스도 거침없이 ‘원샷’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96호 | 20090109 입력  



세계 3대 축제의 하나인 뮌헨 옥토버페스트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밤새 뒤척이다 뮌헨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뮌헨역을 가득 메운 것은 울트라 수퍼 사이즈의 소시지와 반질반질한 프레첼이었다. “와, 독일인은 아침부터 거하게 먹는구나!” 소식가인 남편은 감탄 아닌 감탄을 내지르며 라커에 짐을 맡겼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은 뮌헨역에서 걸어서 20여분.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여행객이 귀띔해 준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대요.” 브라질의 리우 축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불리는 데다 1810년 이래로 매년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모여든다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했다.


역시 여행객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와 남자가 세상을 호령하듯 힘찬 발걸음으로 운동장만 한 크기의 부스로 모여들고 있었다. 맥주 브랜드가 마련한 수십 개의 대형 부스가 한데 모여 있는 이곳은 평상시에는 놀이공원인데 축제 기간에만 세상에서 가장 큰 맥줏집으로 돌변한다.


우리 부부는 독일 맥주 브랜드인 파울라너(Paulaner)부스로 들어갔다. 앤절리나 졸리를 닮은 종업원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겠다고 찾아온 동양인 커플이 신기한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계속 말을 시켰다. “너희 무슨 사이니?” “벌써부터 마시게?” “음식은 11시부터 주문할 수 있어.” 맥주잔은 무조건 1000㏄. 역시 맥주의 나라, 독일답다.


치킨과 학센(독일식 족발) 등의 안주와 함께 소주잔 들이켜듯 맥주를 즐기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이미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연인들을 유럽 곳곳에서 목격해 내성이 생겼음에도 독일인은 차원이 달랐다.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여자의 가슴을 쥐고 ‘브라보!’를 외치는 애정 행각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또 키스는 얼마나 진하던지! 남편은 그 모습이 언짢은지 연신 “역시 마초의 나라군!” 투덜댔지만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 남자의 박력에 감탄했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늘어났다. 무대에서는 악사들이 독일 전통 가요를 연주하며 합창을 유도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고 전통가요와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부르는 모습은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와 맞먹는 에너지를 내뿜었다. 어느 부스를 들어가든 이런 광경은 반복되었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한 나와 남편은 영락없이 이방인의 꼴이었다.


유럽인만의 축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말대로 옥토버페스트는 유럽인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를 마시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이 나는 적잖이 서운했다. “여보야, 다음에 혹시라도 또 오게 되면 그때는 꼭 단체로 오자!”


우리는 이 축제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어느 독일인 노부부였는데 안주 살 돈이 없는지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남편이 꺼내놓자 아내가 다시 집어넣으라고 눈치를 주는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모습이었다. 결국 그 부부는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맥주 한 잔씩만 마시고는 자리를 떴다. 남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동독인이겠지.”


우리 부부가 독일 땅에 발을 붙일 때의 기분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분단국가라는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이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으므로 우리는 여운을 접은 채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꿈에도 그리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번엔 닭장 같았던 6인승 쿠셋이 아니라 로맨틱한 2인용 커플 야간열차다. 밤새 열차가 달리는 동안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마치 나는 연애 초로 되돌아간 듯 가슴이 설렜다.


부부 is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비교하고 질투하는 사람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마루 | 2009/07/22 19:3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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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_ 뮌헨행 야간열차 안에서 사랑을 외치다

뮌헨행 야간열차 안에서 사랑을 외치다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94호 | 20081227 입력  





런던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유로 스타를 탔다. 왜 남들처럼 네덜란드로 가지 않고 벨기에를 택했느냐고? 거기엔 일종의 반항 심리가 작용했다. 민박집 아저씨가 한탄한 대로 한국 사람은 가이드북(가이드북에 따르면 벨기에는 한나절이면 충분하고, 건너뛰어도 무방하다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죄다 네덜란드행을 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덜 알려졌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다고 해서 그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있을까? 런던에서 본 으리으리한 박물관보다 더블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울려 퍼진 무명 가수의 노래가 우리에겐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고흐 박물관’을 포기하고 벨기에 브뤼셀로 떠났다. “사람은 거짓말에는 절대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표현한 벨기에 태생의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일까.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은연중 벨기에를 음험한 이미지로 덧칠하곤 했다. 하지만 벨기에는 초콜릿의 종주국답게 동화적 색채로 점철된 나라였다. 딸기 와플, 형형색색의 초콜릿, 그리고 맵시 좋은 사람들까지. 게다가 벨기에 사람은 대단히 친절하다. 숙소를 물어보면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고, 전철역을 물어보면 전철역 앞까지 안내해 주고, 초콜릿 가격을 물어보면 현란한 상술 대신 시식을 권한다.


우리는 브뤼셀의 어느 한 예술 전문 서점에서 한나절 내내 잡지와 책을 보며 한가한 시간을 누렸다. 바로 옆 미술관에서는 한국 작가 이우환의 그림이 전시 중이었고, 영화관에서는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들마냥 느긋한 한때를 누리고 싶었지만 우리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라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벨기에를 떠나야 했다.


사실 남편은 그 세계적 맥주 축제에 시금털털한 반응을 보였다. “별것 있을까? 그래 봤자 유럽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 마시는 거잖아.” 그러나 유럽에서 만난 여행자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할 축제래요” “저는 그거 보려고 유럽 왔어요”라고 말했다. 팔랑 귀를 가진 나는 열 번 이상의 번복 끝에 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세계적 축제에 뒤늦게 합류하려고 하니 만만치않았다. 벨기에에서 파리로 들어갔다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뮌헨으로 가야 하는 데다 숙소는 거의 다 찬 상태. 여남은 숙소의 숙박료는 원래 요금의 3배에서 5배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축제를 하루내 보고 바로 그날 밤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가는 고난 행군을 선택했다. 말이 선택이지 그 외에 방도가 없었다. 이른바 무박3일 코스.


파리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쿠셋(6개의 침대가 놓인 야간열차) 안에서 나는 극도의 폐소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3명씩 2열 종대로 6명을 닭장 속 닭 가두듯 집어넣다니! 교도소보다 더한 효율주의의 최고봉이 아닐 수 없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이 빼곡히 들어찬 공간, 그중 맨 위 칸에 누울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혀 왔다. 나는 남편에게 “여기서 열두 시간을 누워 있으라고? 천장이 내 코앞에 닿을락 말락 하는데!”라고 울부짖었다.


그런 나를 진정시킨 남편은 건너편 침대에 나처럼 천장을 50㎝ 코앞에 두고 나란히 누웠다. 부부가 서로 안을 수도 없는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는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두 손을 꼭 맞잡았다. 1층과 2층에 누운 사람들이 우리를 올려다봤을 때는 눈꼴 시린 ‘꼴값’이었겠지만 우리에겐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윤여옥이 철조망을 앞에 두고 나눈 키스와도 같이 절박한 것이었다. 제발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


부부 is 아주 가끔 스스로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데 스스럼없이 동의하는 사람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마루 | 2009/07/22 19:3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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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_ 마르크스 묘지에서 느낀 여행자의 로망

마르크스 묘지에서 느낀 여행자의 로망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92호 | 20081213 입력  


런던의 카를 마르크스 묘지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편지와 꽃다발이 놓여 있다.

우리 부부가 더블린과 아일랜드인을 통해 본 것은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풍류가로서의 면모와 훈훈한 인간미였다. 게다가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서부터 공연장까지 더블린 전역에서 쉼 없이 울려대는 기타 소리와 포크 싱어가 선사하는 쾌감이란!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보름 이상이나 체류하고도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 여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는 그리고 돈은 더 없는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런던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숙박 장소를 정할 때 스웨덴에서의 악몽을 되새김질하며 다시는 민박을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박의 가장 큰 장점은 아침 식사가 한식으로 제공되고, 저녁은 라면에다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치~오! 하기야 국민소득이 6만~9만 달러의 부유한 나라면 뭐하나, 주식이 빵 쪼가리인 걸.


덴마크는 주식이 샌드위치고, 스웨덴은 미트볼(한 술 더 떠 소스는 딸기잼이다!), 노르웨이는 정어 절임이다. 아일랜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요리라곤 기껏해야 ‘하이라이스’ 정도다. 토종 한국 입맛을 가진 우리 부부는 하는 수 없이 생 라면에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그래, 이 맛이야!”를 외쳤고, 그 강력한 중독증상에 하는 수 없이 고행코스인 민박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야 했다.


우리가 묵게 된 런던의 한 민박집은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곳으로 주인아저씨 인상이 영락없이 ‘신해철 교주’였다. 나는 남편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가수 신해철 닮았다는 소리 들으시죠?”라고 ‘입초시’를 떨었다. 계룡산 도사처럼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주인아저씨의 시니컬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허스키 보이스! “내가 신해철보다 먼저 이 머리 했거든요. 난 누굴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시 그는 남달랐다. “내가 런던에 온 이유는 하나였어요. 카를 마르크스의 묘가 있다는 것.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그래서 이곳에서 뭘 봐야 하는지 모른 채 가이드북에만 의존하더군요. 런던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내 말보다 어느 포털 사이트의 네티즌 의견을 더 신뢰하더군요.” 그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도, 해주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의 씁쓸한 논평에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가이드북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가이드북에 쓰여 있지 않아 런던에 와서 아무도 보고 가지 않는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묘를 두 번의 허탕 끝(하루는 길을 헤매다, 하루는 문이 잠겨)에 겨우 찾았다. 그의 묘를 눈앞에서 직면했을 때의 야릇한 기분은 런던의 버킹엄 궁전, 브리티시 박물관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하이게이트 묘지 안 수많은 묘비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마르크스의 묘비 주위(마르크스의 두상이 워낙 크다)에는 수많은 쪽지와 꽃다발이 있었고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철학자는 단지 세상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웬만한 여행객은 놓치고 간다는 마르크스의 묘를 ‘나는 보았다’는 뿌듯한 기분. 이것이 여행자의 궁극적 로망 아닐까. 나는 문득 런던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 녀석이 떠올랐다. 홍대 뒷골목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 새벽이면 또 감자탕에 소주로 해장하며 아침을 함께 맞이했던 ‘청춘의 문장들’ 같은 친구 말이다.


사진작가이면서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서른이 넘은 늦된 나이에도 런던, 이곳에서 여전히 인생을 실험하고 있었다. 부럽고, 고마웠다. 거의 4년 만의 해후였던가.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지난날을 더듬는 향수 어린 나와의 수다는 고사하고 남편과 둘이서만 떠들어댄다. 취기가 오른 두 사람은 오로지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저급 수준의 영어 문장으로 매우 열렬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부 is 그때 그 시절, 용광로처럼 들끓었지만 여물지 못한 청춘의 언어를 이해해 주는 사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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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이미리 | 2009/01/29 01:40 | 트랙백 | 덧글(0)

by 아마루 | 2009/07/22 19:3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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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_ 더블린에서 비로소 탈출구를 찾다 (리사 해니건의 공연을 보다)

더블린에서 비로소 탈출구를 찾다


‘서른셋, 서른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90호 | 20081130 입력  



아일랜드의 신예 리사 해니건(Lisa Hannigan)의 공연은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멜로디를 선사했다.


나의 노래방 18번은 유투의 ‘with or without you’이고, 연애 시절 우리 부부가 목이 터져라 합창하며 진상을 떨었던 곡은 크랜베리스의 ‘zombie’다. 연애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딛는 순간 남편이 은밀한 방(?)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영화는 공교롭게도 ‘클로저’. 우리는 후에 그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대미언 라이스의 골수 팬이 됐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코어스, 엔야, 시너드 오코너, 그리고 영화 ‘원스’의 주연이기도 했던 글렌 한사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이 빼어난 뮤지션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것은 검고 진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흑맥주를 생산하는 기네스의 나라,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말하곤 했다. “죽기 전에 더블린에서 대미언 라이스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철딱서니 없어도 한참 없었던 나의 청승은 믿을 수 없게도 현실이 되었다. 길고 긴 터널 같았던 북유럽을 지나 드디어 꿈의 도시, 더블린에 당도한 것이다. 남편의 기대도 적잖았던 것일까. 공항을 지나 도심으로 진입하던 중 남편이 호기로운 목소리로 내질렀다. “우리 여기서 오래 머무를까?”


그건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모국 유사성 때문이다. 실제 아일랜드인을 일컬어 ‘유럽의 한국’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일랜드인이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데다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집 걸러 술집인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 더블린도 펍(pub)의 천국.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갈색 거품을 입술에 묻히고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그 옆엔 어김없이 무명 가수가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영화 ‘원스’와 영락없이 닮은꼴. ‘와, 이곳은 음악의 도시구나’ 하는 감격과 함께 찾아든 여행의 진정한 쾌감!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한 북유럽에 비해 더블린은 어딘가 모르게 만만한 구석이 있었다. 그건 이들이 가난해서도 아니고(아일랜드의 GDP는 영국보다 높고, 그것을 기념한 첨탑이 더블린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기도 하다) 무질서해서도 아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열린 태도와 순박한 표정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너나없이 자기만의 포즈를 취해 준다거나, 펍에서 술을 마실 때면 그중 한둘은 꼭 말을 걸어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남편은 더블린에 와서 드디어 동상이나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표정’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블린의 한 레코드 상점 점원의 귀띔을 통해 더블린에서 제일 잘나가는 펍을 알았다. ‘웰런즈(WHELANS)’라는 곳인데 ‘원스’의 글렌 한사드도 노래를 불렀던 곳으로, 이를테면 홍대 앞 클럽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록을 즐기면서도 헤드뱅잉이나 함성 없이 마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듯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인에게 음악은 스트레스 해소가 아닌, 삶 자체가 아닐까. 우리는 비로소 이곳에 와서야 직장생활에 ‘찌든’ 숙변과 묵은 체증을 떨어버릴 수 있었다.


우리는 대미언 라이스(Damien Rice)의 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준마와도 같은 객원 보컬 리사 해니건(Lisa Hannigan)의 첫 솔로 앨범 공연이 곧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일정에 맞추기 위해 더블린에서 보름 이상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 누구보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한 우리는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자폐적인 리사 해니건의 보이스 컬러와 달리 그녀의 등장은 자못 ‘위풍당당’했다. 강단 있는 한 젊은 뮤지션의 등장을 알리는 첫 무대. 실로폰 소리를 내는 건반, 캐스터네츠, 통기타 등 어쿠스틱 악기로만 편성된 리사 해니건의 공연은 연못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들의 협연 같았다. 과장하자면 그로써 우리의 너무도 고생스러운 ‘고환율’ 여행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리사 해니건의 공연은 아름다웠다. 아일랜드인 고유의 순박한 천성처럼, 기네스 흑맥주의 보드라운 거품처럼.


부부 is 가끔은 허황된 꿈을 꾸고, 때로는 그것을 함께 이루어 내는 사람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임이미리 | 2009/01/29 01:23 | 트랙백 | 덧글(0)

by 아마루 | 2009/07/22 19:33 | 트랙백 | 덧글(0)
6

6회 _ 뭉크의 ‘절규’와 백야, 그리고…

뭉크의 ‘절규’와 백야, 그리고…


‘서른 셋, 서른 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88호 | 20081115 입력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협곡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의 피오르 

북유럽은 알다시피 한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나라다. 우리가 북유럽을 간 시기에는 백야가 끝난 시즌으로 ‘지구가 둥글어서’ 생긴 범상치 않은 자연의 기현상을 목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직감으로는 백야 현상과 노르웨이의 엄격한 술 판매 금지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노르웨이로 가는 기차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보태지자 심중은 굳어졌다.


“일 년의 반은 밤이고, 일 년의 반은 낮이라는 초자연의 세계에 살고 있는 노르웨이인의 집을 방문하라. 아마 그도 당신처럼 조용히 흐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내달리면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침엽수림의 곧고 광활한 기개에 넋을 빼앗겼던 남편은 짐짓 사회학자처럼 말했다.


“노르웨이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는 나라인 거야. 그러니까 술에 의존할 수밖에.” 남편의 해석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노르웨이가 낳은 작가 뭉크와 입센은 둘 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뭉크의 ‘절규’는 백야 현상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한 시간이면 거의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우리는 여행 중 일용할 양식으로 급부상한 알코올은 단 한 방울도 구하지 못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쉽게 숙소를 찾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오슬로에서는 최저가이지만 우리에게는 17만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한 호스텔은 믿을 수 없게도 사면과 천장이 온통 빨간색으로 덧칠돼 있었다. 마치 병동의 침대를 훔쳐 갖다 놓은 듯 으스스한 분위기는 섬뜩했다.


하필이면 비명을 지르는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그림이 침대 위에 붙어 있었다! 평상시에도 어쩌다 그 그림을 보면 뒷목이 섬뜩해지곤 했는데 아무리 양복을 입은 직장인의 모습으로 패러디했다지만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노르웨이 직장인의 절규 아래서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해가 밝으면 저 따위 그림은 무섭기는커녕 웃기기나 할 걸, 그렇게 위로하면서.


청소년 책을 만들었던 남편은 내게 노르웨이가 1인당 작가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아동문학에 있어 독보적인 나라라는 사실을 귀띔해주곤 했다. 춥고 조용한 나라 스웨덴 사람들이 정갈한 자신의 집에서 디자인에 열중하는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북극해 근자에 위치한 노르웨이 사람들은 고독한 자기 방에서 낮밤을 분간하지 않은 채 글을 쓰는 것일까?


우리는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에게서 베르겐에 있는 피오르(fjord)를 추천 받았다. 피오르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협곡을 자랑하는 곳이다. 여행 전에 가이드북을 통해 그 명성을 확인했지만 그곳을 가기 위해선 대대적인 일정 수정이 불가피했다. 노르웨이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나가는 저가항공을 공짜에 일찌감치 예약해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피오르냐 저가항공이냐, 우리는 고민 끝에 더블린으로 떠나기로 했다. 숙소에서 만난 스물다섯의 방랑색 짙은 한국인 청년은 “노르웨이에 와서 피오르도 못 보고, 그게 뭡니까?”라며 되바라진 충고를 건넸지만 우리에게도 나름 사정은 있었다.


오슬로에서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택시 요금은 5분에 2만3000원. 코펜하겐이 이상적인 도시라는 것도, 스웨덴이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노르웨이가 거대한 자연의 나라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북유럽은 우리에게 너무 벅찼다. 우리는 내심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거다.


오슬로 공항으로 가는 사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생긴 나는 얄궂게도 계속 남편의 속을 뒤집었다. “숲이 이 정도면 피오르는 정말 죽이겠지?” 남편은 귀를 막았다. 그러고도 내가 한마디 더 하자 남편이 내 주둥아리를 잡아 꼬집었다.


부부 is 내가 꼬부랑 늙은이가 돼도 여전히 나를 ‘귀엽게’ 보아줄 사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임이미리 | 2009/01/29 01:12 | 트랙백 | 덧글(0)

by 아마루 | 2009/07/22 19:33 | 트랙백 | 덧글(0)
5

5회 _ 인간의 볼 권리보다 동물의 살 권리가 우선

인간의 볼 권리보다 동물의 살 권리가 우선


‘서른 셋, 서른 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86호 | 20081031 입력  



이른바 ‘삐삐 롱스타킹 찾아 삼만 리’.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30분에 한 번꼴로 만난 마을 주민과는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고, 표지판을 찾아 쾌재를 외치고 나면 4차로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후 네다섯 시만 되면 영업이 끝나는 유럽의 관례에 여러 번 허탕을 쳤던 우리는 조급해졌다.


그렇게 물어 물어 어렵게 당도한 린드그렌 마을! 하지만 그곳은 비 오는 날의 놀이공원처럼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미니어처로 재현한 린드그렌의 동심의 세계는 찬탄할 만한 것이지만 우리가 고생한 대가에 비하면 초라했다. 나는 걷느라, 굶느라, 길 찾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의 볼 파인 얼굴을 보자 측은지심이 솟았다. “여보야, 우리가 아마 대한민국에서 삐삐 롱스타킹 마을에 온 세 번째 사람일 거야.” 그 말에 금세 힘이 났는지 미소를 살짝 지으며 덧붙이는 고지식한 그다운 한마디. “세 번째는 좀 과장이고, 다섯 번째 정도는 되겠지?”


스웨덴 여행의 또 다른 표적은 동물원이었다. 일전에 ‘스웨덴에는 동물원이 없다’는 골자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고, 로드 킬을 다룬 ‘어느 날 길 위에서’와 동물원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별’이라는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극을 받았던 터였다. 물론 스웨덴에 동물원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스웨덴에는 번듯한 ‘스칸센 동물원’이 존재한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스웨덴에는 동물원이 없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스칸센 동물원에는 여우와 곰이 공존하는 방만한 규모의 숲이 있고, 바로 그 곰이 먹이를 뜯어먹으며 포효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심지어 위협적인 두 뿔을 달고 있는 버펄로는 우리라고 할 수도 없는 낮은 울타리 속에서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버펄로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남편에게 “조심해!”를 외쳐야만 했다. 스칸센 동물원 직원이 우리에게 “해 지기 전에 빨리 나오세요. 동물들이 당신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농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 나약한 인간이 끼어든 기분이랄까.


우리는 그쯤에서 이 나라가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공 디자인 부문에서 선도적이라는 것, 국민 소득에 비해 사람들의 외양이 검소하다는 것, 그리고 친환경적 동물원 설계가 가능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케아(IKEA)의 정신 “스웨덴에서 자란다면 소외 계층도 일반인이나 상위 계층과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이나 사회를 통해 배울 수 있다”와 동일한 ‘같이 누리자’는 민주적 공공성이다.


우리가 처음에 느꼈던 스웨덴의 우울한 정취는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으로 전복되었다.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이란 말이야?”는 “인간이 그렇게 이타적일 수 있단 말이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9만 달러가 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노르웨이는 어떤 곳일까? 주부인 내게는 사실 ‘노르웨이산 고등어’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우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8시간 넘게 유레일로 내달려 오슬로 중앙역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의 중앙역과 달리 역 앞을 서성거리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사람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가 오버랩되자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물을 사러 수퍼마켓에 들어갔더니 온갖 종류의 술이 철창 속에 굳게 갇혀 있는 것 아닌가. 놀란 토끼 눈으로 점원에게 물었더니 노르웨이에서는 8시 이후에는 술 판매를 금지한다고 한다. 24시간 언제든 술을 살 수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참으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부부 is 가끔은 상대의 말도 안 되는 허풍에 더 오버하며 장단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임이미리 | 2009/01/29 01:04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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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iyeon at 2009/02/18 19:15
안녕하세요.
검색 중에 들렀다가 좋은 글들 내리 다 읽었어요.
여행기 모두 멋지고 재미났지만, 특히 이 글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서 인사 남깁니다.
나누고 더불어 사는 스웨덴 사람들의 정신과 실천이
따뜻하게 전해져서 꼭 가보고 싶어요.
:^)
Commented by 아임이미리 at 2009/02/23 01:11
jiyeon님. 너무 멋진 그림 잔뜩 보았어요. 제가 예전처럼 잡지기자였다면,
대번에 연락을 해서 함께 작업하자고 졸랐을 텐데. 아쉽네요.
하지만 곧 일로든 작업으로든 만날 것이라고 믿어요.
Commented by jiyeon at 2009/02/26 16:35
아이고,
그림에 대한 칭찬은 늘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되려 제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고맙습니다.
*_*  
by 아마루 | 2009/07/22 19:32 | 트랙백 | 덧글(4)
4

4회 _ 스웨덴에서 한국인답게 행동하기

스웨덴에서 한국인답게 행동하기


‘서른 셋, 서른 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아임, 이미리 | 제84호 | 20081018 입력  



스웨덴이 낳은 유명 브랜드 ‘이케아’숍의 쇼핑 가방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주류 여행지인 스웨덴에서 숙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간신히 스웨덴인이 운영하는 한국 민박집을 찾을 수 있었고, 스웨덴 가정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기회라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목소리조차 ‘쉬쉬’ 해야 하는 극도의 적막함은 숨이 막힐 듯했다.


내가 남편에게 꺼질 듯한 목소리로 “영락없는 감옥 신세네” 하면 “그러다 주인이 듣겠어. 좀 조용히 말해”라고 답할 정도. 집안 구석구석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민박 지침들이 쓰여 있었는데 ‘욕실을 쓸 때는 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11시 이전엔 취침’ ‘문 닫을 때는 살살’ 등 주로 통제에 관한 경고였다. 아침이 밝자마자 육중한 수갑을 던져버리듯 민박집을 빠져나와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코펜하겐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 지하철에는 그 흔한 무인발매기 하나 없이 수많은 사람이 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의 무채색 옷차림은 거무죽죽하기 이를 데 없다.


세계인의 일상을 파고든 H&M과 이케아(IKEA)의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도 검소해 가난하게조차 보이는 풍경. 사브와 볼보라는 근사한 자동차 브랜드를 가진 나라라는 계산까지 더해지면 뭔가 짝이 맞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속물스럽게도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우리가 민박집으로 돌아왔을 때 스웨덴 주인 아저씨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거실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 한 청년에게 비밀요원처럼 말을 걸었다. “한국 분 맞죠?” 스웨덴 민박집에선 결코 원하지 않았을 ‘한국인 담합대회’는 이렇게 건넨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런던 금융회사 인턴십 중인 유학생, 노르웨이를 여행 중인 회사원, 예비 사회 선생님, 그리고 스웨덴 디자인 유학생, 여기에 우리 부부까지. 둘 이상 모이면 꼭 술판을 벌이는 한국인답게 우리는 각자 가져온 술(역시 한국인 인심은 세계 최고!)과 안주를 풀어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동안 참아 두었던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나누었다. 집에 돌아온 스웨덴 주인 아저씨는 난감한 이 상황에 안절부절못하고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렸지만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대범해졌느냐고? 그것은 바로 소심한 트리플 A형도 춤추게 한다는 위대한 알코올의 힘 때문이다!


그러나 알코올의 힘은 언제나 그렇듯 아침이면 맥을 못 춘다. 전날 밤 별의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던 한국인 일행은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줍어하며 목인사만 겨우 주고받는다. 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여보야, 어제 나 좀 취했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남편의 응수. “응. 아주 신나 죽더라!”


스웨덴에 가면 남편과 내가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커다란 생선을 가시만 남겨놓고 한번에 발라 먹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껌 씹듯 즐기곤 했던 추억 속의 삐삐롱스타킹. 스웨덴의 국민작가로 칭송받는 린드그렌의 대표작 ‘삐삐롱스타킹’과 다른 작품들을 기리기 위해 린드그렌 마을을 조성해 놓았다니 꼭 들러 봐야지.


우리는 노르웨이 일정도 미루고 스톡홀롬에서 한참 떨어진 ‘삐삐롱스타킹’ 마을로 떠나기로 했다. 스톡홀름에서 4시간 걸려 도착한 한적한 마을. 이 허허벌판에서 과연 그곳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요즘 나는 벽에 부딪칠 때마다 한 마리 나약한 비둘기가 되고 만다. 결혼 전의 위풍당당한 패기와 도전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부부 is 술주정한 다음날, 보기 가장 무서운 얼굴이면서 동시에 가장 기대고 싶은 가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by 아임이미리 | 2009/01/29 00:53 | 트랙백 | 덧글(0)

by 아마루 | 2009/07/22 19:32 | 트랙백 | 덧글(0)
3

3회 _ 벌건 대낮에 '맥주 브런치'가 가능한 나라, 덴마크

벌건 대낮에 ‘맥주 브런치’가 가능한 나라, 덴마크

‘서른 셋, 서른 넷’ 부부의 유럽 여행기

글·사진 아임, 이미리 | 제82호 | 20081004 입력   



디자인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코펜하겐 광장(조지 젠슨, 로열 코펜하겐 등 명성 있는 디자인 숍이 하나의 통로로 연결돼 있다)은 모두 휴가 중인 듯 여유로운 정경이다. ‘칼스버그’ 생산국이자 그 맥주의 절반을 소비하는 덴마크인답게 커피 대신 손에 맥주를 가볍게 말아 쥐고 브런치를 즐기는 그 한가로운 광경이란!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에 우리로서는 브런치도, 맥주도 그저 ‘그림의 떡’이었지만 파스텔 톤의 오목조목한 건물 아래 따스한 햇살을 무람없이 쬐고 있는 선남선녀의 달큰한 조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껏 들뜬 나와는 달리 남편은 CSI 수사요원처럼 심각했다. 코펜하겐의 수채화 같은 풍경도 본체만체, 마누라의 요란한 발짓도 남의 것인 양 가이드북만 주야장천 들여다보고 있는 꼴이란. 여행 전엔 예약 문제로 자신의 뇌를 괴롭히더니 떠나 와서는,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이제는 가이드북 완전 정복에 돌입한 것 같다. 어제의 설움도 가시지 않은 터라 급기야 나는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터지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심장마비의 우려를 살 만큼 다혈질적인 성격의 나는 남편이 쥐고 있던 가이드북을 냅다 뺏어 길거리에 패대기쳤다. 그런데 이게 웬 망신? 우릴 지켜본 한 연인이 큰 소리로 ‘와우!’ 탄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남편에게 외친 한마디. “걱정 마!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우릴 중국인으로 알 테니까.”


코펜하겐에서 극적으로 터진 우리의 신경전은 내내 따로 걷기, 째려보기, 돌부리 걷어차기 등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실랑이로 이어졌다. 그러나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슬그머니 겁도 나고, 남편의 팔짱도 그리워졌다. 생각해 보니 타고난 길치인 내가 오로지 관광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의 가이드 노릇 덕분이다. 남편이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인간 나침반’이 된 데에는 여행자의 신분보다 ‘가장’ 노릇에 충실해진 한 남자의 슬픔(?)도 있는 듯했다.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 싸움을 접고 우리는 ‘성냥팔이 소녀’의 안데르센을 만나기 위해 유레일 기차를 타고 3시간 동안 오덴세를 향해 달렸다. 마을 전체가 동화 컨셉트로 꾸며진 오덴세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진풍경인데, 그 삼각지붕의 자그마한 문을 열면 미운 오리새끼와 인어공주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안데르센으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오덴세가 우화의 세계라면 공예박물관은 덴마크 실용 디자인의 요새다. 모던 디자인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덴마크 디자인의 역사를 ‘의자’를 통해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보는 즐거움이 앉는 즐거움을 압도할 정도다.


우리 부부가 목격한 덴마크는 ‘여유’라고 하는 행복의 한 측면을 비주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나라였다. 이를테면 세계를 선도하는 미끈한 디자인, 한낮에 즐기는 맥주와 브런치, 나시(슬리브리스 셔츠)부터 털모자까지 이어지는 자유로운 사고방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빠와 아이의 다정한 한때, 그리고 세금의 50%를 기꺼이 자신과 타인의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복지국가. 말하자면, 코펜하겐은 이상주의적인 도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신비하기조차 한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왜 나이가 들면 죄다 100㎏에 육박하는 거구의 노인으로 바뀔까? 그건 혹시 안정과 여유의 결론?


우리는 그 미스터리를 풀지 못한 채 이른바 ‘스웨덴 모델(사회복지와 경제사회 모델)’의 중심지인 스톡홀롬으로 그 호기심을 옮겼다. 스웨덴은 진정 복지국가의 모델인가? 이케아는 어떻게 그렇게 싼 가격에 세계인의 인테리어를 점령한 걸까? 아바와 카디건스를 만날 수는 없더라도, 말랑말랑한 스웨디시 팝은 달콤하게 흐르고 있겠지?


부부 is 지도를 못 보는 여자와 지도에만 열중하는 남자의 조합. 싸우다가도 한맘으로 애국자가 될 수 있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 셋, 서른 네 살 부부가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by 아마루 | 2009/07/22 19:31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