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스크린 쿼터 없었으면 '올드보이'도 없었다고?"

▲ 조화유 작가
영화 감독 박찬욱씨가 2월14일 스크린 쿼타(screen quota/한국영화 의무상영제) 축소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독일 베를린 영화제 개최지에서 벌였다고 보도되었다. 그는 앞면에는 ‘No Screen Quota, No Old Boy!’(스크린 쿼타 없었으면 영화 '올드보이'도 없었다), 뒷면에는 ‘Korean Films Are In Danger!’(한국 영화는 위험에 처해있다)라고 쓴 피케트를 들고 시위를 했다 한다.

필자는 박감독이 만든 3대 영화 중 가장 최근에 개봉된 '친절한 금자씨'를 제외하고 '공동경비구역'과 '올드 보이'를 보았지만 둘 다 실망했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찬욱씨가 대단한 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드 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때 "저런 영화가 대상을 받다니..."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뉴욕 타임즈'의 영화 평론가 매놀라 다아기스(Manola Dargis)는 "눈에는 눈 스타일의 박찬욱 복수극 시리즈는 나를 구역질나게 한다"고 했고, '엔터테인멘트 위클리' 신문의 영화평론가 오웬 글라이버맨(Owen Gleiberman)은 "박찬욱은 백정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런 것을 읽고 필자는 나만 '올드 보이'를 별볼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었다. 그 당시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 피 튀기는 폭력 영화의 대부 쿠엔틴 터랜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이었다는 사실도 '올드 보이'의 수상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터랜티노는 끔찍한 폭력 영화 'Kill Bill' 2부작을 감독하고 더 끔찍한 폭력물 'Hostel'을 제작한 미국 감독이다.

▲ 박찬욱 감독이 15일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칸영화제에 출품하기 전에는 '올드 보이'가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고, 영화제에서 수상한 뒤에는 미국에서 선을 보였지만 몇몇 도시의 작은 외화전문 영화관에서 잠시 상영되었을 뿐 크게 손님을 끌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박감독의 이른바 복수극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친절한 금자씨"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미국 영화 평론가협회 회원인 한국인 평론가 박흥진씨는 "친절한 금자씨의 터무니없는 폭력은 가히 코메디라 부를만한데 박감독의 방종한 폭력은 '내 배 째라'식의 심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했다.

박감독이 지난 2000년에 만든 영화 '공동경비구역'은 '올드 보이' 보다는 나은 영화지만, 영화의 첫 도입부가 너무 길고 이야기 전개가 산만해서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상당한 인내심이 없는 관객이면 처음 20분 내로 관람을 포기하고 자리를 뜰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 전개 상 꼭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길게 집어넣은 이영애의 개인 신상 이야기도 지루하고, 두 적군 사이의 총격사건을 일반 사회의 살인사건 수사하듯 하는 이야기 전개방식도 설득력이 부족해서 뭐가 뭔지 헷갈리게만 한다.

차라리 JSA(판문점공동경비지역)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들을 많이 모아 남북분단 현실을 찡―하게 느낄 수 있도록 엮었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을 공연히 수사물처럼 영화를 만들려다 보니 이야기 흐름이 중간 중간 잘리고 산만해져서 재미가 별로다.

한국사람인 내가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데, 만일 이 영화에 자막을 넣어 영어권 관객들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10분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500여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영화의 재미보다는 엄청난 홍보작전이 "이게 도대체 얼마나 좋은 영화길래 이 야단인가"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욕 먹을 각오하고 단언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를 가지고 말한다면, 박찬욱씨는 과대평가된 영화감독이다. 그러나 박감독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본국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미국 주류 언론으로부터는 혹평을 당한 영화 '올드 보이'를 내세워 스크린 쿼타 축소 반대 1인 시위를 해외에서 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올드 보이'나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독일 사람들 앞에서 시위를 하다니 좀 낯 간지럽다.

한국 영화의 국내 극장 의무 상영일수를 연간 146일에서 절반인 73일로 줄이는 것 즉 스크린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주장이 정부나 일반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별로 없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 미국 영화의 홍수 때문에 한국 영화는 설 땅이 좁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영화의 성공과 실패는 작품이 얼마나 감동적이며 얼마나 재미있는가에 달려있다.

미국 영화사들이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 붓는다고 해서 재미없는 영화를 볼만큼 우리나라 관객들이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영화 한편 제작비보다도 많은 50억원을 홍보비로 책정했다는 '태풍'이 흥행에 실패한 것만 봐도 우리 관객의 눈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알 수 있다. 영화 '왕의 남자' 주연 배우가 "스크린 쿼터제가 없었더라면 '왕의 남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외치며 1인 시위를 했다는데, 그건 설득력이 거의 없다.

비록 자금력이 부족해서 미국 영화사들보다 홍보를 많이 하지 못하고 또 극장 스크린도 많이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영화는 결국 입소문을 통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영화 '왕의 남자'와 외화 '펭귄'이 웅변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처음엔 광고도 제대로 못하고 상영 스크린 수도 적었던 '펭귄'은 순전히 입소문으로 작년에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영화다.)

그러므로 폭력과 욕설과 외설이 난무하는 조폭영화나 피비린내나는 복수극 스타일의 영화 대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그런 영화를 만들면 보지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한국 영화가 미국 영화의 홍수를 막아내려면, 별 것 아닌 영화 한, 두 편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예술성 같은 것은 아예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그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돈을 대는 "묻지마 투자" 관행을 없애야 한다. 영화 '친구'―이 영화는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은 아니다―하나만 보고 무조건 곽경택 감독의 '태풍'에 투자했다가 본전도 제대로 못 건졌을 것 같은 투자자들도 이제는 무명(無名)의 능력있는 독립 감독들에게 많이 투자해야 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가지고도 단지 무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을 영화화시키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무명 감독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 감독들을 많이 발굴해야 스크린 쿼터 같은 보호막이 없어도 한국 영화가 살 수 있다.

박감독은 "스크린 쿼터가 없었으면 '올드 보이'도 없었다"고 쓴 피켓트를 들고 시위를 했다지만, 그는 '올드 보이'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대단히 건방진 얘기라고 하겠지만, '올드 보이'는 박감독 자신이나 한국 영화를 위해 없었으면 더 좋았을 영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발 피비린내 나는 사디스트적 폭력 영화는 이제 그만 만들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한국의 모든 감독들, 특히 박찬욱 감독에게 부탁한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작가 / 영어교재저술가
입력 : 2006.02.15 11:30 19' / 수정 : 2006.02.15 11:4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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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루 | 2006/02/27 18:52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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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앤샬리 at 2006/03/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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